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대왕 (문단 편집) === 감자 대왕(Der Kartoffelkönig)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frederick-the-great-potatoes-painting-862x458.jpg|width=100%]]}}} || 아래 두 링크를 참고하면 좋다. * [[바이에른 방송]]의 [[https://www.br.de/radio/bayern2/sendungen/kalenderblatt/2403-friedrich-ii-empfiehlt-kartoffeln-100.html|감자 이야기]] * 독일 위키 [[https://de.wikipedia.org/wiki/Kartoffelbefehl|감자 칙령(Kartoffelbefehl)]] 프로이센에 [[감자]]를 보급한 인물인데 당시 프로이센에서 감자를 키우기는 했지만 사람이 먹는 게 아니고 [[돼지]] 먹이로 쓰는 작물이었고, 탄수화물 공급은 전적으로 [[밀]]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밀값이 요동치기라도 하면 식량 사정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처음으로 감자를 주목하게 된건 [[1747년]]에 있던 포메른 기근이었다. 당연히 기존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식습관, 관념등을 모두 흔들어 버리는 조치인지라 [[실레시아]] 일대에 먼저 감자에 대한 홍보 및 섭취 독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1753년]] 3월 24일, 감자 칙령(Kartoffelbefehl)의 첫번째 조치였다. 그러나 감자를 어떻게 키우고, 수확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농부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한 프리드리히는 1757년 4월 5일에 감자와 관련된 가이드를 농부들에게 제공하라는 두번째 감자 칙령을 발표한다. 이 과정에서 파생된 전설이 바로 아래 후술할 에피소드이다. [[1774년]] 전국에 대흉작이 발생하자 이 문제를 해결할 구황작물, 식량 증대, 전투식량 확보 등의 목적으로 전국에 감자를 심으라고 명했는데, 사방에서 "맛 없어서 개도 안 먹는 걸 사람더러 먹으라니 너무하지 않냐."라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프리드리히 2세는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자신의 수랏상에 매일 감자로 만든 요리들을 적어도 한 가지 이상 필수로 올리라고 명령했다. 이로서 감자를 개도 안 먹는다고 하면 [[불경죄|그 감자를 매일 먹는 왕은 개만도 못하다고 말하는 셈]]이 되었기 때문에 개도 안먹는걸 먹으라고 하냐는 불평은 잠재우는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자 보급이 영 지지부진하자, 프리드리히는 꾀를 내어 "지금부터 감자는 왕실 수라와 귀족의 요리에만 올릴 수 있다."고 칙령을 내렸다. 이렇게 되자 [[칼리굴라 효과|사람 마음이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어진다고]], 감자를 돼지 사료라 경시하던 일반 농민들조차 "감자라는 게 사실 엄청 맛있는 게 아닐까?", "국왕 폐하께서 드시는 감자는 여기 감자보다 훨씬 깨끗한 감자일 거야." 하는 생각에 [[스트라이샌드 효과|몰래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먹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 프리드리히 2세 자신의 직할지에 대규모로 감자를 기르고 여러 마을들의 공터에도 감자밭을 꾸며놓으면서, 그 유명한 '거인 연대'라고도 불리는 척탄근위대로 하여금 감자밭을 지키게 하였다.[* 현대로 따지면 [[미합중국 해군특수전개발단|DEVGRU]], [[델타 포스]] 같은 최정예 특수부대가 고작 신품종 [[나라미|정부미]] 창고나 지키는 셈이다. 물론 사전에 '이 나라에서 오직 대통령 단 한분만 드실 수 있는 초 특수 품종!'이라는 식으로 밑밥을 팍팍 깔아두긴 했지만.] 물론 감자 보급이 목적이었으므로, 밤에는 감자를 가져가기 쉽도록 일부러 초병을 철수시켜서 밭을 방치했다. 당연히 농민들은 경비가 허술한 밤을 틈타 감자를 서리해 갔고, 결국 프리드리히의 계획대로 감자가 프로이센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처럼 국왕이 직접 나선 덕에 감자 보급이 그만큼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1778년 ~ 1779년'''에 걸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맞붙은 [[바이에른 계승 전쟁]] 때는 두 나라의 병사들이 모두 '''하라는 전투는 안 하고''' 전투 식량 확보를 위한 감자 약탈을 더 열심히 해댄 탓에 '''감자 전쟁'''이라는 별명이 생기기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약탈 대상이 된 [[바이에른]] 지방의 농부들은 엄청나게 죽어 나갔다.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 보급의 공로로 '''감자 대왕'''이라는 애칭과 엄청난 존경을 얻었고, 현대에도 프리드리히 대왕의 무덤을 방문할 때 감자를 두고 오는 독일인들이 많다. [[https://static1.squarespace.com/static/5402e23ce4b0a7034afad3a2/t/5746cd643c44d8296dfe73d3/1502810530394/frederick+the+great+potato+grave|감자가 놓여 있는 왕의 무덤 모습]]. 감자의 꽃말이 '''복종'''임을 의미한다는걸 고려해보면 이는 "당신을 여전히 우리의 주군으로 인정하겠습니다." 하는 의미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찬사인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